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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년 5월 13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건축과 건축자(7)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0:28-30 -
성경 본문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10:29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과 건축자
하나님 아들이신 선한 목자
(2) 아들이 주는 영생
아담은 영생을 얻지 못함(창3:22)
선악과를 먹은 아담에게 여호와께서는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손을 들어 생명나무 과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하였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생명나무의 길을 잃었고 영생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다시 그 문을 열어주시지 않는 한 어떤 방법으로도 인간에게 영생은 없는 것이다.
영생은 하나님의 삶이다(창21:33,단4:34,12:7참)
죽지 않고 끊어지지 않는 생명은 하나님에게 밖에는 없다. 피조물이란 다 시작이 있으니 끝이 있는 것이다.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이며 그 삶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생명관계가 끊어지면 당연히 영생은 없는 것이다. 이는 마치 전기회사와의 계약 관계가 끊어지면 당연히 전기가 없는 것과 같다. 영생은 하나님과의 생명관계다.
그런데 동양에서는 혼과 육이 하나라고 보고 육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길을 찾아보려 했고, 서양에서는 육체는 죽지만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보고 영혼의 영생을 얻어 보려고 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육신이나 영혼이라는 인간재료를 가지고 죽지 않고 사는 길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육체 안에나 혼 안에나 영생은 없다. 생기를 하나님이 불어넣었다고 해서 영원한 것이라는 생각도 있지만 생기는 단지 생기일 뿐이지 영생은 아니며 또 혹시 그 생기가 영원히 산다 해도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생은 인간에게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을 떠난 아담에게 영생의 길을 막았다고 했다. 만일에 사람의 육체나 혼 속에 영생이 있다면 하나님이라도 인간이 영생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집 전구에 전기가 될 수 있는 재료가 있다면 전기회사에서 전기를 끊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 속에 영생의 조건이 내재한다면 하나님도 영생의 길을 막지는 못하실 것이다. 인간을 포함해서 어떤 피조물에게도 영생은 없다. 단지 그 육체의 생식과 유전을 통해서 어느 기간까지일지는 모르지만 육체의 생명이 연속 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영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하나님이 영생하시는지 안하시는지도 모른다. 영생하지 못하는 자는 영생도 알 수 없다. 다만 아브라함도 죽었고, 이삭도 죽었으며, 야곱도 죽었으나 모세가 불렀고 다윗도 불렀기 때문에 여호와는 산자의 하나님으로서, 죽지 않고 사시는 분이구나 라고 아는 것 뿐이다.(막12:26)
하루살이가 내일을 모르듯이 인간은 영생을 모른다. 다만 죽음 때문에 죽지 않고 살기를 사모하면서 영생을 사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육신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선지자들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님과 그 백성의 관계 회복을 통한 이스라엘의 회복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네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는 그 “죽음”은 인간이 알고 있는 죽음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약에서
시133:1-3에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했고,
단12:2에는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들도 있을 것이며....”라고 했다.
이로써 보면 구약의 개념은 개인적으로는 연합된 삶의 행복이고, 국가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회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적인 회복도 보지 못했고 개인적인 행복도 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들은 선지자들로 예언 한 영생을 아직 보지 못했던 것이다.
신약에서
그런데 사도들은 예수 안에서 나타난 영생을 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에 계시된 영생은 모두 아들 자신이거나 그와 관계된 것이다.
영생은 아들과 관계된다.
공관복음에서는 영생에 들어감(마18:8,19:16,25:46), ‘영생을 얻음’(막10:17,눅18:18,), ‘영생을 받음’(막10:30,눅18:30) 등으로 말하고 있고 마지막 복음서인 요한복음에서는 아들 자신을 두고,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음(3:36,5:24,6:46)), 아들이 영생을 줌(10:28,17:2), 아들을 먹으면 영생함(6:51), 예수 자신이 영생이심(1요5:20) 등으로 말하고 있다.
영생은 하나님의 삶이므로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 안에 있는 아들의 삶이다. 아들은 완전한 관계를 이르는 말이다.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죽음(창2:17)이 왔다. 그러므로 영생은 관계 회복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들 안에는 영생이 있고, 그 아들의 삶은 곧 영생이며, 그와 연합한 자들에게는 그 아들의 영생이 분배 된다.(1요5:11참)
‘믿는다’, ‘영접한다’, ‘시인한다’...는 모두 아들과의 연합을 위한 것이다. “아들이 있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없느니라“(1요5:12) 한 것이 이 뜻이다.
아들과의 완전한 연합은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며, 하나님으로 하여금 닫았던 문을 열게 하는 근거가 된다. 전기회사와의 관계가 회복 되면 전기는 다시 공급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 되면 영생은 영원히 공급 된다. 전기가 들어오려면 돈이 필요하고 영생이 들어오려면 아들이 필요하다.
#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다.(1요5:13)
영생은 아들 안에 있는 것이며 아들을 통한 하나님의 영원한 공급인 것이다. (1요5;11,12)
# 영생은 완전한 축복이 삶
a. 구약적믿음 (주로 현세적 인 하나님의 축복과 선물)
장수(시19;16), 가족의 축복(전9;9), 범영((신28;1-), 안전(신8;1), 하나님과의 교통(시16;, 신8;3),
b. 공관복음의 믿음(주로 내세에 받을 축복)
c. 요한복음의 믿음(현세와 내세를 연결하는 실제-아들)
아들은 생명을 주고 누리게 하기 위해 오셨음(10;10) 아들은 생명이심(산떡, 생수,등등 ) 믿는자는 영생을 받았음, 아들이 있는 자는 영생이 있음,
d. 요한의 계시록의 믿음( 하나님의 백성, 어린양의 신부-최종적 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