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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년 5월 20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건축과 건축자(8)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0:40-42 -
성경 본문
11:1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11: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11: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11: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11: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1: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1:12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1: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
11: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11:16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과 건축자
생명의 번식(건축)을 위한 한 알의 밀(11:~21:)
2. 죽음의 길로 가심(요11;1-44)
a. 죽음의 길에서 나사로를 깨우러 가심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요단강 저편에 있을 때 나사로가 병들었으니 와 달라는 전갈을 받으셨으나 예수께서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그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신 후 “유대로 다시 가자” 하셨다.
주님 앞에는 무엇이나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 아들로 영광을 얻게 하는 일이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즐거운 계절이 된다. 하나님께 바쳐진 인생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되기 때문에 모든 일이 다 축복이 된다. 죽음의 길이지만 살리는 길이 된 것이다,
2.) 하나님의 손이 일하심
하나님께 드려진 것마다 거룩하다. 특별한 용도에 사용되고 비밀하게 쓰여진다. 하나님만 아시고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누가 예수님의 죽으심이 인류의 구속이 될 줄을 알았던가?
아담 이후 그 누구도 그의 죽으심이 그렇게 쓰일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것은 하나님만 아시는 비밀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의 비밀한 손은 인간의 생각과는 완전하게 다른 일을 하신다.
그러므로 의인이 화를 당하고 악인이 형통한다고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 인생은 잠잠히 그 비밀한 손이 하시는 일을 기다려야 한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한다.
3.) 배정 된 시간에 배정 된 일을 하심
유대로 가는 길은 죽음의 길이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고 합니까?” 했지만 주님은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낮에 다니면 실족하지 않는다.” 하셨다. 이것은 비유로 하신 말씀이다.
유대인들은 하루를 12시간으로 정해서 사용했다. 이 시간은 인생에게 확실하게 배정된 시간이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배정 받은 일을 하면 빛 가운데서 걸어간 것처럼 앞이 막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으니 내가 깨우러 가야 한다” 는 것이었다.
인생에게는 누구나 배정된 시간이 있고 배정된 일이 있다. 그 일은 그 시간에 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일을 하는 동안을 지켜주신다. 주님은 죽음이 앞에 있었지만 자기에게 배정된 일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 일은 양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히 얻게 하는 일이었고, 하나님은 그 길을 열어 놓으셨고, 사단과 세상은 그 길을 막지 못했다.
4.)죽음의 길에서도 살리심
주님은 나사로를 살리려고 그 집에 가시려는 것이었다. 죽음으로 가는 길에서도 사람을 살리러 가신 것이다. 죽음도 하나님의 뜻이고 나사로를 살리는 것도 하나님의 일이었다. 그분 앞에는 무엇이나 다 하나님의 일이었다.
항해사 앞에는 풍파만 있고, 전사 앞에는 전쟁만 있는 것같이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의 일만 있는 것이다. 또한 싸움쟁이가 있으면 싸움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하나님의 일만 있고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나는 사람은 얼마나 복된 사람인가!
우리는 모두 그의 죽으심의 길에서 구원을 받고 살아난 사람들이다. 주님에게는 죽으심의 길이 곧 살리심의 길이었다. 요한은 이 점을 마음에 두고 이 사건을 여기에 배열한 것 같다. 다른 복음서에는 이 사건이 기록되지 않았다.
5.)신뢰와 사랑은 주님의 보좌를 움직임
나사로는 주님의 발에 값진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발을 씻었던 마리아와 늘 극진히 대접했던 마르다의 오라버니요, 주님께서도 친히 사랑하시는 자였다. 믿고 사랑하는 자들이 부른 것이다. 이 일이 아니었다면 주님은 요단 저편에 조금 더 계셨을지도 모른다. 죽음을 찾아가는 일이 그렇게 바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신뢰와 사랑은 죽음의 길이라도 가볍게 해준다.
주님이 가시는 길에는 늘 핍박이 있었다. 그러나 반면에 환영하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님은 그들에게서 힘을 얻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마르다와 마리아는 각별히 주님을 대접하고 사랑했던 것이다(뒤에 그들은 십자가 밑에서 울고 있었던 여자들이었고 맨 먼저 부활의 복음을 들었던 여인들이다). 주님은 그들의 사랑으로 인하여 깊이 위로를 받으셨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구조요청에 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유대로 가시는 발걸음은 무거웠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부름은 그 발걸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주지 않았을까? 말씀에 응답하면 말씀하는 자가 힘을 얻고, 간증에 응답하면 간증하는 자가 격려를 받는다. 애기는 먹는 대로 자라고 사랑을 주는 대로 응답하기 때문에 키우는 자가 수고를 모르는 것이다.
주님이 나사로의 집으로 가는 것은 죽음 앞으로 가까이 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사랑의 힘이 주님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의 보좌(통치)를 유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제자들은 주님이 가시는 길이 죽으러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두려워하고 망설였을 것이다. 그런데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뒤에 끝까지 주님을 따르지는 못했지만 당시로서는 외로우신 주님에게 크게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요한은 이 일을 빠뜨리지 않고 기록했다. 이유는 이들이 이렇게 해놓고도 배신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로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 것이다. 주님에게는 무슨 일이라도, 누구라도 힘을 실어 줄 사람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과 사랑과 용기는 그것이 비록 불변의 것이 못 된다 하더라도 주님에게는 필요하다. 우리는 변할 수 있다. 인간에게 불변이란 없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그 때 주님에게 필요한 것이다. 베드로는 맹세하고서도 배신했다. 그러나 그의 진심은 핍박 중에 계시던 당시의 주님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