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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년 9월 30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건축과 건축자(22)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4:1-3 -
성경 본문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과 건축자
마음에 근심(요동)하지 말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요14:1~3)
예수께서는 어떻게 할지 몰라서 요동하는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으니 “요동하지 말라” 하시고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셨다.
제자들은 주님이 가시는 길을 모르니 요동할 수밖에 없었다. 주님이 떠난다면 그들의 마음은 머물 곳이 없었던 것이다. 빗나간 기대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주님은 그들의 마음이 머무는 곳이었기에 희망 중에 따라왔지만 이제 어디론지 모르는 곳으로 떠나신다면 남는 것은 허무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불안했고, 요동했다. 가룟 유다는 떠났고, 나머지는 근심 중에 있었던 것이다.
거처를 준비하러 가심
그래서 주님은 "근심하지 말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으니 내가 가서 있을 곳을 준비하고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가겠다" 고 하신 것이다.
아버지 집 -아버지가 거하시는 곳
예수께서는 일찍이 성전을 보시고 “내 아버지 집”이라고 말씀하신 일이 있다.(2:16) 그러나 지금 말씀하신 집은 그 때 말씀하신 그 집이 아니라는 것을 제자들은 알았을 것이다. 그러면 어디에 그 집이 있다는 것인가? 아버지 집은 아버지가 거하시는 곳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 아버지께로 간다는 말씀인 것이다.
세상과 종교 안에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거할 곳이 없었다. 예수는 세상에서는 어리석은 사람이었고, 유대종교 안에서는 거리끼는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께로 가서 거처를 마련하고 제자들도 거기 거하게 해야 했던 것이다.
-아들들이 거할 곳
창조자 안에는 만유가 거할 처소가 있고, 아버지 안에는 아들들이 거할 집이 있다. 세상은 선악을 아는 지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기준에 맞는 사람만 거할 수 있지만, 창조자 안에는 만유가 다 거할 곳이 있고, 아버지 안에는 아들들이 아무리 많아도 각각 거할 처소가 있다. 누구나 어떤 아들이나 다 거할 곳이 있다.
예수는 아들로서 아버지 집으로 가심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기 땅에 왔으나 세상과 종교가 버렸을 때 아버지께로 가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아들들이 되게 하여 아버지 집으로 데려가려 하신 것이다.
예수를 버린 세상과 종교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사람을 버리고, 선악과로 조작된 인간들로 구성된 세계이다.
아담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위치를 버리고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다른 사람이 되어 자기와 같은 아들들을 낳았고,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한 세계(바벨)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땅의 주인인 참 사람이 왔을 때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은 것이다.(3:16참) 이 권세를 얻은 자들은 아버지 집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시는 분이니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근본이시고 근본은 창조자에게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자를 믿으니 또 근본으로 돌아가는 나를 믿으라는 것이다.
아담 안에서 인간들은 근본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고 자기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추구하려 한다. 그런데 자신이 추구하려는 목표가 보이지 않으면 요동하고 방황하는 것이다.
아담은 사단에게 속아 자기 목표를 찾다가 수단을 강구했고, 유다는 자기의 길이 막연해지자 계략을 동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목표가 아버지였으므로 괴로웠지만 요동치는 않으셨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는 것이다. 아버지께로 가는 사람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인생의 목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임 인생은 하나님을 표현하고 그를 대신하기 위해서 그의 형상을 따라 그의 모양대로 지어졌다. 그러므로 목표는 근본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그와 하나됨으로 그분을 대신하는 것이다.
지음 받은 인간의 목표는 하나님이다. 즉 하나님께로 가는 것, 곧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다. 씨는 열매가 되어 다시 씨로 돌아간다. 인격으로 지어진 인간은 그 인격의 충만으로 다시 지으신 이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이 목표 이외의 다른 목표를 찾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목표를 스스로 찾다가 끝이 보이지 않으면 당황하고 요동하는 것이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목표가 있어서 예수를 따르고 있었으나 주님의 결국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방황하기 시작했다. 목표가 어두워졌던 것이다. 주님은 때가 낮이라고 하셨으나(요9:4참) 그들에게는 밤이었던 것이다. 자기 목표를 찾는 사람은 언제나 밤인 것이다.(요13:30)
그러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은 항상 낮이다. 갈수록 더욱 분명해지는 길이고 밝아지는 길이다. 아버지와 하나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이것은 근본으로 돌아가는 길이며, 진리 안으로, 생명 안으로 돌아가는 길이므로 항상 빛이다.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성전에는 많은 거처가 있고 왕궁에는 많은 방이 있다. 이와 같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러나 인생이 스스로 세운 목표에는 배정된 일이 없으므로 거처가 없다. 가시밭은 있으나 길이 없고, 땀이 흐르도록 일해야 하지만 소득이 없다.(창3:17~19참)
그러나 아버지 집에는 아들들을 위한 신성한 임무가 있다. 길이 있고 진실이 있고 생명이 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므로 그를 표현하는 자에게는 영원히 표현할 일이 있고, 표현할수록 영광스러워지는 일이 있다. 영원한 집이 있고 무한한 길이 있다. 하는 일마다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다. 헛된 일이 없다. 할 일이 있고 거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주님이 가시는 이 길을 알지 못했다. 자기 목표를 찾는 인간에게는 이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어야 함
그러므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믿어야 한다.(히11:3참)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믿어야 했던 것이다. 피조물이 어떻게 창조자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으며 아들이 어떻게 아버지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다.(히11:9참)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창1:1)는 말씀을 믿어야 한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다.”(히11:3) 그러므로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er보아야 한다.”(히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