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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년 10월 7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건축과 건축자(23)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4:1-6 -
성경 본문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14:5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과 건축자
아버지께로 가는 길(요14:1~6)
예수께서 말씀하신“내 아버지 집”은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이요(요2:16), 자신이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일으키겠다고 하신 그분의 몸이다(요2:19). 그것은 처음에는 개인적인 몸이었으나 죽음과 부활을 거쳐 증가함으로써 단체적인 몸이 되는데, 이 몸은 그 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거듭난 모든 믿는 이들로 구성된다(벧전1:3).
이 몸은 하나님의 집이요(딤전3:15, 벧전2:5, 히3:6), 하나님의 처소며(엡2:21,22, 엡2:21,22),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3:16). 또한 이 집에는“거할 곳이 많다” 했는데, 이것은 하늘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품에 만유가 거할 처소가 있다는 뜻이며, 땅 위에는 그리스도의 몸에 많은 지체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전3:6-17, 롬12:5).
그러나 당시, 제자들이 이것을 알 리가 없었기 때문에“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그 길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했던 것이다. 그들은 주님께서 죽으러 가신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요14:4). 그러나 죽으러 가시는 길이 어찌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겠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아버지 집으로 가는 것이 어떤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인 줄 알았던 것 같다. 공간의 이동에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버지께로 가는 것은 공간이동이 아이라 인격이동인 것이다. 즉 어떤 인격이 그의 근본이신 아버지께로 가는 길인 것이다.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것은 공간이동이므로 교통수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께로 가는 것은 인격문제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격이 그 수단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려면 그가 좋아하는 인격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는“내가 곧 그 길이요, 그 진리이며, 그 생명이라”하셨던 것이다.
예수는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다
동산에 있던 아담에게는 생명나무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었으나, 동산을 떠난 모든 인간에게는 예수가 유일한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정하심을 따라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같이 된 아담을 끝내시고, 생명나무의 실제인 새롭고도 산 길을 만드신 것이다. 이 길은 모든 사람을 자신의 죽으심 안에서 구속하여 아버지께로 데려가는 유일한 길이다. 즉 그의 죽으심 안에서 모두는 구속을 받아서 그와 함께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길이며, 그 안에 있는 것이 곧 아버지 안에 이르러 있다는 뜻이다. 공간적인 길에 대해서는 안내자가 있거나 지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은 예수의 그 인격인 것이다.
예수는 아버지께로 가는 진리다
예수는 아버지께로 가는 길일 뿐 아니라, 그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는 실제다. 또한 빛은 그 자체가 빛의 속도다. 빛은 간다. 빛은 일초 동안에 지구를 일곱 번 이상 돈다고 한다. 빛과 빛의 속도는 구별이 안 된다. 그 가는 길이 따로 없다. 그 자체가 그 속도의 길이며 실제다. 그것은 빛이 그렇기 때문이며, 또한 빛은 그런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그 자체가 아버지께로 가는 진실이며 사실이다. 그의 삶(죽고 다시 삶)은 아버지께로 가는 삶이기 때문에 그가 사시는 것이 곧 아버지께로 가는 사실이며 진실이다. 또한 그의 삶은 모든 사람이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삶이며 진리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안에서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다.
예수는 아버지께로 가는 생명이다
생명은 방법이며 사실이다. 모든 생물은 다 숨을 쉰다. 이것은 생명이 사는 수단이며, 사는 사실이다. 수단과 사실은 생명의 현상이다. 생명은 생명으로 산다. 지식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로 산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것이 곧 생명이고, 생명은 그 자체가 삶의 수단과 사실이 되는 것이다.
예수는 아버지께로 가는 생명으로서, 그 삶으로서 길이 되고, 그 사실로서 진리가 되며, 길과 진리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구속 안에 있는 생명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과 함께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산다. 그가 사는 것은 수단이고 사실이며, 이 수단과 사실은 그 생명의 현상이다. 이와 같이, 예수는 십자가 생명으로 사셨고, 그 삶은 그의 수단이었으며, 그의 사실이었다. 이 수단과 사실은 그 생명의 현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예수 자신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그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엡1:7). 공간을 이동하는 데는 지식적인 수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격이 이동하는 데는 인격이 그 유일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께로 간다는 것은 인격이 아버지 안으로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즉 그와 인격적으로 연합한다는 의미이다.“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5) 함과 같은 것이다.
아담은 아버지께로 갈 인격을 버리고, 하나님같이 되고자 선악을 아는 지식을 취하였다. 그래서 그 지식으로 아버지 집으로 가려고 했다.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 자기 의를 보이려고 자신들의 소산물로 제사를 드렸고, 라멕의 아들들은 생존을 위해 육축을 하고, 기쁨과 위로를 얻으려고 악기를 만들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려고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으로 교리를 제정하고, 전통을 세워 길을 만들고, 계율을 제정하고 실행하여 입지를 확고하게 함으로써 사실을 만들어 보려고 하지만,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는 생명(구속 받은)이 없으면 결국 그것은 위선으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없이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
예수는“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