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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년 10월 14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건축과 건축자(24)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4:7-14 -
성경 본문
14:7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14:8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4: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과 건축자
아버지를 보여 주옵소서(요14:7~14)
예수께서‘아버지 집으로 간다’고 하셨을 때 제자들은“주여, 어디로 가십니까?”하고 물었고,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대답하셨다. 이 때 제자들은 다시 “아버지를 보여 주옵소서”라고 했던 것이다.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점점 더 어려워져 갔다. 아버지 집은 어디 있으며, 그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는데, 제자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대답을 들었고, 답답해진 그들은 그러면 아버지를 좀 보여 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렇다! 아버지를 본다면 그 집이나 그 집으로 가는 길을 알지 못해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제자들은 바른 질문을 했던 것이다.
1. 너희는 이미 아버지를 보았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너희가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요약하면, 너희는 이미 나를 보았기 때문에 내 아버지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제자들에게는 참으로 점점 더 황당해지는 대답이었던 것이다.
1) 우리는 아버지를 본 일이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앞에 있는 예수라는 한 사람을 만났고, 그 말씀을 듣고 따르고 있었을 뿐, 하나님을 본 일이 없고 알지도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빌립은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라고 한 것이다. 즉 이것은 ‘우리는 당신을 보았을 뿐이지, 하나님을 본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보여 주세요. 그러면 만족하겠습니다. 지금은 답답합니다.’ 라는 뜻이었다.
2)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
주님의 말씀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열매를 보고 그 씨를 안다. 열매는 씨에 의해서 결정되고, 씨는 그 열매에 의해서 정의된다. 이와 같이 아들을 보고 아버지를 안다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표현이다. 아들은 열매와 같고, 아버지는 씨와 같다.
2.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음
원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 모양대로 지음 받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 정상이다. 창조자는 피조물을 결정하고 피조물은 창조자를 정의한다. 정상적인 길에서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그 모양이다.
1) 사람이 정상적인 길을 이탈함
그러나 아담이 이 정상적인 길에서 이탈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표현)이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들을 알아보지 못했으며, 그 표현이신 아들을 보고도 그 아버지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마21:33~42).
유대인은 혜택을 주는 분을 믿고 율법으로 심판하시는 분을 경외해 왔고, 헬라인은 철학적으로 멀리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그 존재자를 알고 있었을 뿐, 아버지 하나님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유대인은 신앙하는 사람들을 대표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존중하는 사람들을 대표한다.
제자들은 혜택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따르다가 그 가능성이 모호해지자, 더 근원적이라고 여겨지는 그 존재자가 알고 싶어졌던 것이다.
2) 예수님은 아버지를 보이러 오셨음
예수님은 필요를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혜택을 주러 오신 분이 아니었고, 지혜를 존중하는 헬라인들에게 그들이 찾는 그 존재자를 보여주려고 오신 분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아들로서 아버지를 나타내려고 오신 분이었다. 그러므로“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즉 나를 보고도 어찌 다시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하느냐는 것이었다.
3. 그 나무로 그 씨를 앎
집을 지으려고 하는 사람이 소나무에게 네 아버지를 보여 달라 하면 소나무가 무엇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아마도 솔 씨를 보여 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가 그 솔 씨를 보고 소나무를 알 수 있겠으며, 또 안다 하더라도 그것이 집 건축에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그런데 집을 지어야 할 사람들이 소나무는 버려두고 그 씨만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만약 임업을 하라 하면 이번에는 그 씨를 버려두고, 나무만을 구하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신앙은 유대인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그 지혜는 헬라인의 수준을 넘지 못할 것이다. 믿어도 목마를 것이고 알아도 혼란만 더할 것이다. 씨를 주면 나무를 찾고, 나무를 주면 씨를 찾는 사람들은 언제나 주인이 원하지 않는 다른 것을 찾고 있는 것이다.
1) 예수님은 스스로 행하지 않으셨음
예수님은“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믿지 아니하느냐”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하는 말은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다. 주님은 아버지로 인하여 말씀하셨고 아버지로 인하여 일하셨다. 아무 것도 스스로 하지 않으셨다.
2) 생명 되신 아버지로 인하여 행하심
새는 그의 아버지로 인하여 공중을 날고, 물고기는 그 어미의 생명을 받아서 바다를 헤엄친다. 예수는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시고 행하시고 사셨는가? 오직 아버지로 인한 것이었다. 하나님이 그 안에 있으면 하나님 말씀을 하는 것이다. 만유는 각자 그 생명대로 살도록 지어졌고, 사람 역시 그 생명대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생명이 되면 하나님 사람으로 살고, 마귀가 생명이 되면 마귀 사람으로 사는 것이다(요8:44참).
3) 너희도 나와 같이 행할 것임
그러므로 예수의 피로 구속 받은 사람은 구속 받은 그 생명으로 살게 된다(출13:13). 그 생명은 그의 말씀하심을 듣고, 그 안에 아버지가 계심을 믿으며, 그의 행하심을 보고, 그 아버지를 믿는다. 그러므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셨다. 아멘.
예수님은 아버지께 구하여 그런 말씀을 하셨고, 그런 일을 하신 주님은 이제“너희는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하셨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그의 생명이 되셨기 때문에 그렇게 사셨다. 이제 우리는 예수가 생명이 되셨으니 그 생명으로 살게 될 것이다.
“내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 것이라.”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그가 시행하신다는 것이다. 즉 구속 받은 새 생명으로 살면 주님이 함께 사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