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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년 10월 21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건축과 건축자(25)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4:15-24 -
성경 본문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14: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14: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과 건축자
함께 하기 위한 또 다른 보혜사 (요14:15~24)
주님이 떠나실 것을 알고 제자들이 불안해하고 있을 때,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 염려하지 말라 하셨고, 그래도 안심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어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겠다” 고 하셨다.
“아버지 집”은 그리로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자신이고, “다른 보혜사”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어 아버지 집으로 가게 하는 생명으로서 실제의 영이신 그리스도다.
육신으로 오신 아들은 영원히 함께 할 수가 없는 형태였기 때문에 영원한 처소와 생명을 약속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역사적으로 그들과 함께 하는 분이다.
그들이 부르는 “조상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거쳐 모세와 다윗과 함께 하신 살아계신 분이다. 그분은 역사 안에서 그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었으며, 이스라엘은 그분과 함께 역사를 만들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하나님은 추상적인 신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함께 하는 하나님이시다.
이와 같이 제자들에게 예수는 실제적으로 함께 하는 주님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와 함께 있을 동안 그들은 다른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다. 주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그 주님이 떠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안했고 당황했으며 주님은 함께 할 처소와 살아갈 생명을 약속하신 것이다.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심
* 또 다른(alon)
“또 다른” 이라는 말은 본질은 같은데 형태는 다르다는 의미의 말이다. 즉 예수님의 다른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은 육신의 형태로 함께 하지만 다음에는 또 다른 형태의 “보혜사”로 함께 한다는 것이다.
* 보혜사(parakletos)
“보혜사”는 곁에서 변호하는 자, 돕는 자를 칭하는 말이다. 육체로서의 나는 떠나지만 나와 하나인 또 다른 형태의 보혜사가 와서 영원토록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이다.
보혜사는 아버지로부터 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하셨다.
보혜사는 영이다.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오셨듯이 보혜사도 아버지로부터 온다. 형태는 다르나 근본은 하나라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육체가 되신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는 우리 생명이 되기 위해 영이신 보혜사를 보내신다는 것이다.
육체로 우리와 함께 하신 아들은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한 장막이 되셨고, 영으로 함께 하실 보혜사는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한 생명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 사람에게로 오시고 사람은 보혜사를 통해 하나님께로 가는 이 우주적인 만남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 은혜와 실제로 사람에게로 오셨고, 사람은 보혜사를 통해 생명으로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람에게로 오시고 사람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보혜사는 진리의 영이심
그는 진리(실제)의 영이다. 주님은 내가 곧 아버지께로 가는 진리라고 하셨다. 그는 하나님이 사람에게로 오시는 실제이며, 사람이 하나님께로 가는 실제이시다. 보혜사는 아들이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는 실제로서 그 영이다.
아들은 어떻게 우리 생명이 되시는가?
아들의 육체는 떠난다. 그러나 아들은 우리 생명이 되시기 위해 과정을 거쳐 그 영(보혜사)으로 다시 와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가 과정을 거치실 때 우리는 그 안에서 함께 과정을 거침으로 한 생명으로 연합 되고 한 생명이 되었다.(롬6:5참)
*세상은 받지 못함
세상은 예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들의 영을 알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한다. 예수에게 있어서 육과 영은 하나다. 그를 알지 못한 자는 그의 영도 알지 못한다. 그의 육을 거부한 자는 그의 영도 거부한다.
그는 우리 생명이 되시기 위해 육체 안에서 과정을 거치셨다. 그러므로 그 육체를 무시한 자는 그의 과정 안에 참여하지 못하고 그와 연합하지 못한다. 육체(삶과 죽음) 안에서 만나고, 영(부활) 안에서 연합한다. 그러므로 그의 육체를 버린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며 받을 수 없다.
*보혜사는 제자들과 함께 함
그러나 제자들은 육체 안에서 주님을 알고 있다(17). 육체로 그분과 함께 있음으로 또 그의 영도 그들 속에 있게 될 것이다. 육체로 함께 하신 주님은 또 다른 형태의 보혜사로 생명 안에 함께 하신다. 보혜사는 또 다른 형태의 주님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아들을 다시 보지 못하지만 제자들은 다시 볼 것이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주님이 살므로 그와 과정을 함께 한 제자들도 살 것이다. 함께 죽었으면 함께 산다(롬6:8). 그러므로“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하셨다.
보혜사는 상호내재함을 알게 함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육체는 만남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상호내재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진다. 그러나 부활 안에서는 상호내재할 수 있다. 그 날은 부활의 때요 그 영(보혜사)의 때다. 육체 안에 제한된 때가 아니라 해방의 때다(막12:25참).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나타내시고 함께 하심
*나타내심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신다. 사람은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한 형상으로 지어졌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사람을 따라서 자신을 나타내신다. 전기는 전구에 따라서 자신을 빛으로, 모터에 따라서 힘으로 나타낸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모세에게는 모세의 하나님으로...그 사람 따라서 자신을 나타내신다.
* 함께 하심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우리(아버지와 아들)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함께 할 것이라”고 하셨다. 주님은 계명을 지키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타내시고 함께 하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처음부터 함께 하는 하나님이시다. 창조에서 형상과 함께 하셨고, 구속에서 인류와 함께 하셨으며, 연합에서 교회와 함께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