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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2년 10월 28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건축과 건축자(25)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4:25-31 -
성경 본문
14: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4: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14:29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14:30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14:31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과 건축자
아버지께서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시는 보혜사 (요14:25~31)
1, 아버지께서 아들의 이름으로 보혜사를 보내심
우리와 영원토록 생명으로 함께 할 성령은 아버지께서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다.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신다는 것은 아들 안에서 보내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들의 영이라고도 한다(행16:7).
그릇의 물이란 한 그릇 안에 있는 물이다. 그 양은 그릇으로 제한되고 정의된다. 이와 같이 보혜사 성령은 아들로 제한되고 정의된 영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은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과정을 거친 “그 영”이다. “그 영”은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 오셨다(요7:39참). 그러므로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영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다(1요4:2,3).
* 보혜사는 모든 것을 가르치심
제자들은 예수님의 인도를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이 떠나심으로 인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영”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는 영이다. 그가 친히 모든 과정을 거치셨기 때문이다. 그는 출생과 인생과 죽음과 부활을 거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 그러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시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는가? 어떻게 다시 살고 어떻게 다시 오는가? 이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다. 부끄러움과 영광이 무엇이며, 절망과 소망이 무엇인가를 다 아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이런 분의 가르침을 받는 것은 지고의 지혜이고 축복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 영의 가르치심을 받는가? 그 영은 아들 안에서 우리를 포함하시고 모든 과정을 거치셨기 때문에 우리 안에 기름부음이 있으면 그분의 가르침을 받는다(1요2:20,27).
* 보혜사는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심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하였다. 신약성경의 말씀들은 들었던 대로만이 아니라 다시 생각났으므로 기록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기억력의 발현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새롭게 알아졌던 일들이다.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한다. 같은 입장, 같은 경험 안에 있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주님의 입장에 서게 되었을 때 그 영의 생각나게 하심을 받았던 것이다.
또한 그 영과 함께 있음으로 주님의 말씀하셨음이 생각난 것이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과정을 거쳤다. 우리 영은 그 영과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셨다. 성령이 가르치실 것이고 생각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 마귀(diabos)는 송사자, 보혜사(parakletos)는 변호자.
2, 아들이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른 평안을 주심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하였다.
* 하나님과 연결된 평안
평안이라는 말은 eirene라는 말로 eiro 즉 합하다, 연결하다 에서 온 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세상이 말하는 평안과 다르다. 불가의 평안은 모든 장애를 벗고 얻는 것이고 유가의 평안은 현실적인 문제가 평정되고 오는 것인데, 예수의 평안은 하나님과 합해지고 연결된 평안이다.
그의 삶은 조용하지 않았다. 매우 시끄럽고 고통과 함께 하는 생활이었다. 그러나 평안이 있었기에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고 한 것이다. 제자들은 불안했고 예수님도 불안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평안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께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영원한 평안은 하나님과 하나 되고 연결되는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동산을 떠난 후 두려워서 숨었다고 했다. 평안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는 죽음으로 가는 길에서도 평안을 주신다고 하셨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 불안이다. 그러므로 다시 합해지고 연결되어야 한다. 주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중보자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오시는 길이며, 사람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다. 그는 이를 위해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를 떠나 아버지께로 가신 것이다. 오실 때 아버지와 함께 오셨고 가실 때 우리와 함께 가신 것이다.
* 갔다가 다시 오는 평안
그러므로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다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하셨다.
간다는 것은 영원하신 아버지께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 것이며 온다는 말은 아버지로부터 다시 난다는 것이다. 근본으로 돌아갔다가 새 피조물이 되어 다시 오는 것이다. 고철은 용광로에 갔다가 다시 올 때는 새로운 쇠가 되어 온다. 아버지께로 가면 새 것으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아들보다 크시다. 아들은 데리고 가지만 아버지는 새로 지으신 분으로 아들보다 크시다. 누구든지 아버지께로 갔다가 오면 새 것으로 온다. 아버지는 만유의 근본이시고 창조자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아버지께로 갈 수 없고 아들을 통하여 아들 안에서 과정을 통과하여 함께 가는 것이다.
* 세상이 관계하지 못하는 평안
주님은 우리를 데리고 아버지께로 가시는 길이다. 그런데 세상을 다스리는 자가 온다는 것이다. 세상 임금은 주님의 길을 비웃는 사단이다.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라 했던 자로서 지금도 세상을 미혹하여 아버지께로 감을 비웃는 자다.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다. 나는 다만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라”는 것이다. 사단은 거역하는 자로서 사람을 자기 안으로 이끌어 자기와 같이 거역하게 한 자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심, 즉 다시 나게 함을 방해하고 비웃는다. 그러나 상관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거역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는 것을 알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거역하는 자는 거역의 길을 가고 순종하는 자는 순종의 길을 간다. 각자의 길이 있기 때문에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상관할 일이 없는 것이다.
# 주님께 연결된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름
지혜로 평안을 누린다는 사람, 형통으로 평안을 얻는다는 사람이 있으나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고 연결된 평안을 누린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과정을 거쳐 연결되었다.
연결되었음으로 가르쳐 주고 생각나게 하며 갔다가 다시오게(거듭남) 하고 세상이 관계할 수 없게 한다.
# 마귀의 송사를 능히 이기는 보혜사의 변호로 승리의 평안을 누림으로 근심할 것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