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12년 11월 11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건축과 건축자(27)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5:1-11 -
성경 본문
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15: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15: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과 건축자
생명의 건축-유기체(요15:1~11)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그리스도와 교회는 생명의 유기체적 건축이다. 지식은 생각을 만들고 생각은 당을 만들게 한다. 그러나 생명은 구속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 나무와 가지처럼 한 생명체가 되고 한 열매를 맺는다.
예수께서는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하셨다. 농부는 씨를 뿌렸고 나무를 심었으므로 나무의 근본이요 아버지다. 농부와 씨는 물질적으로는 유기적 관계가 아니지만 경작에 있어서 아버지로서 유기적이다.
이 말씀은 다음 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라는 말씀을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나무와 가지와 같다. 나무는 생명의 공급원이고 가지는 열매를 맺음으로 그 생명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한 생명의 공급이시고, 교회는 그 생명의 풍성을 표현하는 유기체다.
주님은 다락방에서 “여기를 떠나자” 하신 후에 제자들을 데리고 성전으로 가신 것 같다. 성전은 이방인의 뜰-여인들의 뜰-이스라엘의 뜰-제사장들의 뜰을 지나 정문에 이르는데, 현관에는 황금으로 만든 포도나무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 포도나무를 보시면서 “나는 참 포도나무” 라는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포도나무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의 상징으로 쓰였다. 극히 좋은 상품 포도나무로(사5:2), 좋은 종자로(렘2:21), 이스라엘을 심었으나 결과는 들 포도를 맺었고 악한 가지가 났으므로 불에 던지게 되었다고 했다.(겔15:1~8 호1:1 시80:8)
이 나무는 넝쿨이므로 재목으로는 아무 데도 쓸 데가 없고 심지어 일 년에 한 번씩 성전에 바치는 화목으로도 적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조건 불태워버린다고 한다(겔15:1~8참). 땔감마저 될 수 없는 쓸모없는 존재, 이스라엘을 여호와는 극상품 나무로 여기고 힘을 다해 경작했으나 좋은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에 버려진다고 한 것이다.
전지를 해야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는 나무
포도나무는 열매를 얻기 위해 전지를 해야 한다. 경작의 성패가 전지에 달렸기에 3년 내에는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전지를 하고 그 후에도 매년 전지를 해야 하는데, 가지가 나올 때 열매 맺을 가지와 맺지 않을 가지를 가려내야 한다. 이는 인간과 같다고 할 것이다. 분열을 가져오는 선악을 아는 지식은 열매 맺기 전에 미리 잘라내야 하고, 연합을 가져오는 생명은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포도는 생명의 풍성을 상징함
이렇게 경작하기 어렵고 쓸모없는 나무를 농부가 가꾸는 이유는 오로지 그 풍성한 열매 때문이다. 성전 현관에 세워진 황금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의 번성을,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드러내신 참 포도나무로서의 자기 자신은 제자들로 하여금 그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한 것이다. 세상을 떠나시는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도록 당부하신 것이다.
풍성한 열매는 유기적 생명의 결과로 얻음
포도나무는 성실한 농부의 경작과 가지를 위한 나무의 온전한 생명공급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농부-나무-가지-열매는 유기적인 생명체계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가지는 단지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열매를 맺지 못할 것까지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농부께서 알아서 열매 맺지 못할 것은 아예 잘라버리기 때문이다.
(“무릇 내게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농부)께서 이를 제하여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고 이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농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경작을 하고, 나무는 자기 생리에 의해영양을 공급하여 열매를 맺게 한다. 가지는 다만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주님 안에 거함으로 그의 열매가 됨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스스로 열매를 맺으려는 것은 생명에 대한 거역이며, 방황은 아담으로부터 전가된 형벌이다. 열매는 생명의 유기적인 연합의 결과다. 지식은 분열이므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후에 단 한 알도 열매를 맺은 일이 없다. 그가 만든 것은 모두 생명이 아닌 모조품이다.
그러므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맺나니..” 라고 하셨다.
예수에 대한 지식으로는 열매를 맺지 못함
예수에 대한 지식으로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려고 했던 많은 사람들이 실패했다. 그 지식이란 고작해야 표면적인 행위와 역사를 아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그 행위를 모방한다 해도 그것은 모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아는 예수의 삶을 실천하려고 노력해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과연 그 짧지 않은 역사 속에서 몇이나 그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행위 이전에 생명의 연합이 필요하다. 그의 죽으심 안에 함께 죽지 않는 한, 그와 함께 다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의 행위는 그의 삶이고, 삶은 그 생명이다.
예수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사는 것이 필요하다. 위대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무엇인가 더 좋은 삶을 위하여, 진리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별로 가르치신 것이 없다. 다만 우리 앞에서 세상에 의해 죽임을 당하시고 하나님에 의해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산 자와 죽은 자를 본다. 하나님에게는 선한 자와 악한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산자와 죽은 자만 있다는 것이다. 산자는 산 것을 내놓고 죽은 자는 죽은 것을 내놓는다.
나무 따라서 열매가 맺힘
참 포도나무에서는 참 포도가 열리고 거짓 포도나무에서는 거짓 포도가 열린다. 어떤 가지에서는 포도가 많이 열리고 또 어떤 가지에서는 열리지 않는다. 한 송이의 포도는 스스로 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유기적인 연합의 결과다.
그러므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하셨다.
말씀이 깨끗하게 함
그런데 왜 어떤 가지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가? 다른 말이 있어서 그렇다. 아담에게는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말이 들어갔다. 다른 말이 들어가면 더러워진다(좋은 열매를 맺지 못함). 그러나 내가 주님 안에 거하면 주님의 말씀이 내안에 거함으로 께끗하게 전지한다. 주님의 말씀은 다른 말들을 제하여버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주님의 말씀으로 깨끗해졌다(3).
주님의 말씀만 들으면 깨끗해진다.
말씀이 열매를 얻게 함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 하셨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 안에 거하면 그분의 말씀은 우리 안에 거하고, 그 말씀은 부활의 힘으로 모든 것(열매)을 이룬다. 그의 죽으심은 새 창조를 위한 것이다(12:24).
그리하여 열매를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며 너희는(우리는) 나의(주님) 제자가 된다".하셨다. 열매는 나무(그리스도)의 생명의 풍성이고 그 뿌리(아버지)의 영광이다.
# 유기적인 생명의 열매는 뿌리의 영광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표는 이와 같이 만물이 그 풍성으로 지으신 이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단은 이를 막기 위하여 선악을 아는 지식으로 생명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마귀는 지식으로 사람을 송사하여 자기 문제에 빠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생명의 유기적 관계를 회복하여 그 풍성한 열매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