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2012년 12월 30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건축과 건축자(34)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6:16-22 -
성경 본문
16: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신대
16: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뇨 하고
16:18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한 말씀이 무슨 말씀이뇨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16: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16: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과 건축자
신성과 인성의 연합으로 완결되는 신성한 생명의 분배(16:1~33)
B. 신성한 생명의 맏아들이 태어남(요16:16~22)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너희는 곡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주님은 지금은 가실 것이나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날에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1. 독생자로 오신 예수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로 오셨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듯이 아들도 한 분이었다. 그러나 그분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은 맏아들로서 많을 아들들을 이끌어 새 인류의 조상이 되시려는 것이다.(롬8:29,히1:6참)
독생자는 하나님의 존재와 함께 하시는 분이지만 맡아들은 새 인류를 위한 머리가 되는 분이다. 주님은 하나님을 위한 독생자이시고, 우리를 위한 맏아들이시다.
2. 맏아들로 오신 예수
독생자는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창3:15)으로 낳으셨고, 맏아들(롬8:29,히1:6)은 사람들 중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낳으셨다. 인류 중에서 그들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으로써 온 인류를 다시 나게 하는 새 인류의 조상이 되신 것이다.
그는 죄를 없애기 위하여(1요3:5) 죽으시고 옛 인류가 떠나온 아버지 앞으로 가서 새 인류의 머리로 인정받고 다시 돌아오셨다. 이것은 첫 사람 아담이 왔던 것과 다르다.
아담은 흙으로 지음 받은 산 혼으로 왔으나 맏아들은 하나님 아들로 인정받고 오셨다. 아담은 산 혼을 생산하려고 왔으나 맏아들은 하나님 아들들을 이끌어 구원에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한 알의 밀알로서 새 생명을 퍼뜨리려고 오신 것이다(요12:24).
a. 맏아들 안에서 새 인류
아담은 산 혼으로 지어진 첫 사람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새 피조물로서 마지막 사람이다(고전15:45).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 안에서는 죄가 있든 없든 옛 사람이지만 마지막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는 죄와 상관없이 새 사람, 즉 새 피조물인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사람인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후5:17).
b. 죽고 다시 사신 분 안에서 새 인류
첫 사람은 산 혼이 되었으므로 생명나무 열매를 먹어야 새 사람이 될 수 있었다.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같이 되었으므로 새 사람이 될 길이 막혔던 것이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같이 된 아담을 끝내기 위하여 그의 죄를 짊어지고 가셨고, 새 인류를 위해 다시 오셔야 했다. 그러나 가시는 것은 죽음이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불안했던 것이다.
죽음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이전에 죽었다가 다시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태어나기 이전도 모르고 죽은 후도 모른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 가셨다가 아버지로부터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즉 누가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겠는가? 죽음은 피조물의 운명이지만 다시 오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인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허락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는 새 인류의 머리로서 인정을 받고 오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c. 하나님이 인정하신 새 인류
그러므로 새 사람은 흙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으로 다시 난 사람들이다. 아담이 창조될 때는 아무도 본 일이 없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가 아버지께로 가셨다가 다시 오시는 것은 거듭난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너희가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신다고 했다(행1:11).
제자들은 그의 죽으심과 가심을 보았으며, 다시 오심을 보고 또 기다렸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두번째 창조를 친히 본 증인들이다. 우리도 모두 예수께서 죽으신 것과 아버지께로 가심을 보았다. 주님은 가신 대로 오신다
이것은 해산의 고통과 같다. 해산하기 전에는 고통이 심하지만 해산하고 나면 아이 난 기쁨을 인하여 모든 고통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주님의 죽으심을 인하여 고통이 심했으나(메시야 시대의 진통) 그의 다시 오심을 보고 기쁨이 넘쳤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맛봄에 불과했다. 그래서 다시 그의 오심을 기다렸던 것이다.
3. 다시 오시는 예수
a. 새 생명으로
아버지께로 가셨으므로 언제든지 다시 오신다. 하나님은 만유를 시작하신 분이요 아버지는 아들을 보내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아버지 안에서는 언제나 다시 오시는 분을 만나기 때문에 기쁨이 충만하다.
죽으신 분은 다시 살아나야 하고 가신 분은 다시 와야 한다. 아담 안에서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죽으면 다시 살지 못하고, 가면 다시 오지 못한다. 그러나 아들의 세계에서는 아버지가 있으므로 죽어도 다시 살고, 보내신이가 있음으로 가도 다시 온다.
b. 새 임무로
주님은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함으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왜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않고 근심만 하느냐는 것이다 보내신 이에게로 가므로 다시 오신다는 것이다. 어디로 가느냐가 문제다.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하셨다.
다시 오시는 이가 새 인류를 이끌어 구원에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맏아들로 오실때는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우리 주님께 경배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완전한 인권과 그 나라의 승리임으로 이 기쁨은 아무도 빼았지 못할 것이다.
#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은 새 생명으로 오시기 위한 것이며 보내신 이에게로 가시는 것은 새 임무로 오시기 위한 것이다. 주님은 아버지로부터 새 생명으로, 보내신 이로부터 새 임무를 가지고 오시는 분이다. 주님은 죽으시고 다시 사신 분이며 또 가시고 다시 오시는 분이다.
독생자로서 아버지를 표현하셨고, 맏아들로서 새 인류의 조상이 되기 위하여 다시 오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