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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 2월 24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건축을 위한 기도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7:25-26 -
성경 본문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줄 알았삽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을 위한 기도 요17:1~·26
D. 믿는 이들이 하나로 건축되기를 원하심 요17:6~24
4. 의로우신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상호내주를 위하여 기도하심 요17:25~26
예수께서는 최후의 기도에서 믿는 자들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거룩하신 아버지를 부르셨고, 사랑 안에 상호내주하기 위해서는 의로우신 아버지를 불러 기도하셨다. 거룩하시다 함은 구별된 생명이라는 뜻이며, 의로우시다는 함은 특별한 관계라는 뜻이다.
1. 거룩하신 아버지 말씀으로 하나 되기를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 안에서 창조 되었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 안에서 구속 받았으므로 절대적으로 구별된 존재들로서 하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 안에서 인류가 하나이듯이, 구속 안에서 우리는 하나다.
그런데 창조 안에서 하나인 인류가 분열된 것은 선악을 아는 지식 때문이고, 구속 안에서 하나인 믿는 이들이 분열된 것은 종교적인 지식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것은 이 구속으로 시작해서 온 인류를 “하나”안으로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진리로 거룩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셨다.(17)
진리는 거룩하신 아버지의 말씀이다.(17) 아버지는 진실이시기 때문에 그의 말씀은 진리인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지식은 거짓될 수 있으나 하나님 자신은 진실하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이라 하면 능력이 중심이 되지만, 아버지라 하면 생명이 중심이다. 생명은 진실하다. 능력은 모방할 수 있지만 생명은 모방할 수 없다. 아버지만은 영원히 진실이다.그래서 주님은 진리, 즉 아버지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셨다.
종교는 아버지 말씀이 없어서 분열되었다. 가인과 아벨은 아버지의 말씀은 없고 선악을 아는 지식만으로 제물(예배)을 드렸기 때문에 분열되었던 것이다. 오늘 날의 사정도 다를 바 없다. 아버지 말씀은 없고 진리라는 것만 있기 때문에 제각기 딴 소리(예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각자가 아는 진리는 또 다른 사람이 아는 진리와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서로가 자기가 아는 것이 진리라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의 지식은 배격하는 것이다. 이것이 특히 종교의 현실이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 말씀으로 하나여야 한다.
2. 의로우신 아버지 안에서 상호 내주하기를
주님은 마지막으로 의로우신 아버지를 부르시고 상호 내주하기를 위해 기도하셨다. 의로움이란 통상 정의, 공의라는 개념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의로우신 아버지를 부르신 것은 아버지의 사랑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의로운 하나님은 있었으나 의로우신 아버지는 없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의로우신 아버지를 불러 그의 사랑을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절대적인 속성은 사랑이다.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는 아버지를 알았다”고 하셨다. 선악과를 먹고 그 지식으로 만들어진 세상은 아버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아버지가 없기에 하나님이 두려워 숨어 있는 것이 인간이다.(창3:8~10참)
“그러나 나(아들)는 아버지를 알았고 ”라고 하셨다. 그는 아버지를 알았기에 아들이라 하셨고, 그 이름(속성)을 제자들에게 알게 하신 것이다. 즉, 아버지는 사랑이시라고 알려 주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유대인들인 제자들에게 거룩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사람이 아직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정의롭고 무서운 하나님이 아버지라니 과연 누가 이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예수께서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들을 보고 그의 아버지를 알았을 것이다. 예수님에게서 본 것은 모세에게서 본 것과 달랐다. 그것은 검은 구름과 화염과 뇌성과 나팔 소리가 아니라 성령이 비둘기처럼 그 위에 머무는 것이었다. 죄인을 떨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살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았기에 "하나님은(아버지) 사랑이시다"(1요4:8) 라고 알았을 것이다.
주님은 아들로서 아버지의 이름(속성)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우리에게 알게 하신다. 그는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심으로써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 그 사랑이 우리 안에도 있도록 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예수의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다. 그는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다가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불경죄(눅22:70)로 처형당하셨다. 이로 보아도 유대 종교는 아버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들의 목적은 모든 사람에게 여호와는 사랑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집을 나간 아들은 선악과 안에서 쥐엄 열매를 먹으면서 돼지를 키워야 했으나 아버지는 생명 안에서 아들을 기다린다는 것이다(눅15장참).
공의로운 하나님 앞에는 아무도 함께 설 수가 없다. 그러나 아버지 안에는 함께 있을 수 있다.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요14:2).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아버지의 이름 안에 있어야 한다.
주님은 상호내주하기를 위해 의로우신 아버지를 부르셨다. 아들이 아버지께 받은 그 사랑이 제자들에게도 있어서 주님이 제자들 안에 있기를 원하셨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랑 안에서 함께 하듯이 주님과 우리도 그 사랑 안에서 함께 하는 것이다. 사랑은 관계를 온전하게 한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아버지로서 우리를 사랑하심에서 의로우시다. 의는 완전한 관계다. 완전한 관계는 사람을 살린다. 여호와는 완전한 관계로 우리를 살리신다. 하나님은 살리시는 분으로서 창조하시고 구속하시고 영생을 주신다. 그러므로 그는 의로우신 아버지시다.
인간의 지식은 공의와 사랑의 대립을 뛰어 넘을 수 없다. 공의는 사랑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사랑은 공의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과연 인간이 이것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으며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대신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그런 하나님을 주장하고 전파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무리다. 그래서 하나님을 대신한다는 사람들은 사람을 죽이기는 했으나 살리지는 못했던 것이다.
# 거룩하신 아버지는 절대적으로 구별된 생명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으며, 의로우신 아버지는 온전한 사랑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상호내주한 것처럼 주님과 우리가 상호내주하게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