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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 3월 17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건축을 위한 죽음과 부활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8:12-38 -
성경 본문
8: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하속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18: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18: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 권고하던 자러라
18: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8:16 베드로는 문 밖에 섰는지라 대제사장과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왔더니
18: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18 그 때가 추운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18: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18: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18: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아느니라
18: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가로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18: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18: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18: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 하니
18: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18: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18:28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18:29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18:30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18:31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18:32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18:33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1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18:35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18:37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18:38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을 위한 죽음과 부활(요18:1~20:13,17)
2. 예수께서 유월절 양으로 재판을 받으심 요18:12~38
구속을 위한 유월절 양은 제사장에 의해 흠이 없는지 심사를 받아야 했다. 구속을 위해서는 값을 합당하게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a. 종교의 재판을 받으심(요18:12~27)
1). 종교 세력 자 안나스에게로 끌려가심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받으시기로 하셨는데 유데 종교 지도자들은 검과 무기로 무장한 군인들과 천부장과 제사장의 하인들을 보내서 예수를 결박하여 안나스에게로 끌고 갔다.
안나스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으로서 로마 왕권을 배경으로 한 유대 종교 최고 권력자였다. 그는 A.D 6~15 년까지 대제사장이었으며 아들들 중 네 명이 다 대제사장을 지냈고 그 해의 제사장 가야바의 장인이었다. 성전 경영을 사유화하고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래서 탈무드에는 “화 있을지어다 안나스의 집이여!”라고 했다고 한다.
안나스가 예수님께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종교 실세에게 먼저 끌고 갔다는 것은 구속하는 어린양이 종교 전체에서 심사(재판)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인간을 빗나가게 한 근원이 종교문제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먹었다고 했는데 그 아들 가인과 아벨은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왔다고 했다. 이것이 최초의 종교행위였고 인류역사는 종교행위로부터 시작 되었다는 것을 계시하는 것이다.
종교는 신성한 것을 취급한다. 그래서 종교는 신성하게 보인다. 그런데 가인과 아벨의 역사는 시기와 증오와 살인을 계시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 같이 되려 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자기 원하는 대로 하려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목적을 위해 제물을 가지고 왔다가 그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아벨을 죽였던 것이다. 종교성은 겉으로는 신성한 것으로 가려져 있지만 속에는 하나님 같이 되려는 본성이 숨어 있는 것이다.
마귀는 인자를 시험할 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하였다. 하필이면 왜 이런 시험을 걸었을까? 아담은 돌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서 선악과를 먹었던 것이고, 가인과 아벨은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 종말은 자기를 위해 아벨을 죽이는 것이었다. 인류 역사는 이 사실의 증거 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자리에 있는 인류를 되찾아 오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종교의 최고 실력자 앞으로 끌려 가셨다. 안나스는 비웃었을 것이다. “네가 인류를 구속해? 너의 생명은 내 손안에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가거라”고 했을 것이다. 주님은 반대로 그에게서 마귀의 말을 다시 들었을 것이다. “이 돌들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고 조롱하던 마귀를 보시면서 더욱 더 구속의 절박함을 보셨을 것이다.
2)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심문 받으심(마26:57~68)
안나스는 예수님을 보고 다시 대제사장이자 사위인 가야바에게 넘겼다. 구체적인 재판을 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는 율법학자들과 장로들이 모여 서 예수를 죽이기 위한 증거를 찾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안나스의 종교세력권 안에 있는 자들이었다.
그 첫번쩨 심문은 “네가 이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고 했느냐는 것이었다. 이는 2:19절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이란 하나님의 궁극적인 소원인 인간 성전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마귀에게 속은 아담 안에는 인간 성전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인간 성전이신 주님에게 오히려 참람하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두번쩨 심문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이다. 이 질문은 마귀의 유혹과 같은 말이었다. 이는 신에게 묻는 말이 아니라 마귀가 인간에게 묻는 말이다. 마귀는 동산에서도, 광야에서도 같은 말로 시험했던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존재라고? 네가 하나님을 대신할 잘라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어디 내 앞에서 능력을 내 놓아보라 그러면 내가 믿겠다.......”고 날마다 시험하고 조롱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담은 결국 그 유혹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죽이려는 자들은 마귀의 올무를 다시 내 놓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라고 다구쳤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당하게 “그렇다”고 답하셨다. 그럴수록 “그렇다 장차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권능의 우편에 앉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고 하셨다.
이 말을 들은 그들은 옷을 찟고 분게하며 ”더 이상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하겠느냐“ 하였고 듣던 자들은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소리 쳤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었다. 정해진 일이었다. 마귀가 지배하는 아담의 세계에는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이 심사가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 마귀와 인간의 전쟁은 이것이다. 누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능력이냐, 인격이냐? 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사람의 아들이었고, 부활하신 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실 때도 사람의 아들이었음으로(행7:56)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때도 사람의 아들이실 것이다(마26:64).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고 천국을 세우기 위해서 주님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 마귀와(마4:3,6) 종교에 대해서(마26:64) 단호하고 절대적이시다.
선악을 아는 아담은 자신으로서는 하나님의 전이 될 수 없고 아들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종교적인 방법으로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다가 아벨을 죽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구속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인간의 위치를 회복하고 새 생명을 주어 하나님의 집이 되고 아들이 되도록 하려고 세상에 오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