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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 4월 14일
주제: 생명의 복음
제목:생명의 건축을 위한 죽음과 부활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요19:28-30 -
성경 본문
19:28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19: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말씀 요약
요한복음 - 생명의 복음
생명의 건축을 위한 죽음과 부활(요18:1~20:13,17)
2. 예수께서 유월절 양으로 재판을 받으심
e. 하나님은 아들로 대답하심 요19:30
옛적에 하나님은 여러 가지로 대답(말씀)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대답은 믿지 못했던 것이다.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 왔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를 받았으며, 날마다 만나를 먹고 살면서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돌아서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원망했던 것이다.
예수시대에도 제자들은 주님에 대하여 하나님의 확실한 보증으로서“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희 말을 들어라”(마17“5)고 말씀하심을 직접 들었다고 했고(벧후1:16,17)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고 고백도 했던 것이다(마16:16). 그러나 예수께서 마지막 길을 가시는 그 절체절명의 자리에서는 아무도 믿지 못하고 알지 못해서 다 부인하고 떠났던 것이다.
1). 이 때 하나님은 왜 아무 말씀도 안하셨을까?
사람은 평상적이고 문제가 없을 때는 곧잘 믿는 것 같은데 막상 어려움이 닥치면 믿지 못하고 오히려 부인하고 원망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대답하지 않으실까? 세상에서 버림받고 죽어가고 있는 것이 너무 분명한 한 사람을 두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라고 말하면 과연 누가 믿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에는 “이 마지막 날에 아들로 말씀하셨다”고 하였다. “이 마지막 날”이란 종말적인 날이고 예수 사건은 종말적 사건이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로 말씀하시지만 종말적으로는 아들로 답하신다는 것이다. 종말적 사건에서는 언제나 아들이 대답이다. 추수 때에는 열매가 유일한 대답인 것과 같다.
2). 하나님은 계시자이심
어떤 때는 불이나 바람으로(자연계시), 혹은 그의 사자들을 통해 율법이나 의식같은 것으로(특수계시) 자신과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다. 그런데 자연계시는 지극히 단순한 것을 보여주지만 보는 자의 해석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고, 특수계시도 지극히 제한된 것을 알려주지만 받는 사람의 입장과 태도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에 혼란을 정리하기 어려운 것이다. 같은 풀을 먹고도 소와 염소는 각각 다른 육체를 만들고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하물며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두고 무슨 말을 하신다고 해서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같이 되려는 아담에게 정상적으로 접수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종말적으로 아들로 말씀하셨던 것이다. 아들이 하나님의 대답이시다.
(a). 아들로 말씀하심(히1:1,2)
십자가에서 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에 대하여 마태와 마가는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하시고 큰 소리를 지르고 운명하셨다'고 했고, 누가는 '“내 영을 아버지께 부탁 하나이다” 하고 운명하셨다'고 했는데 요한은 '“다 이루었다”하시고 운명하셨다'고 했다.
"왜 버렸습니까?" 하시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에게 묻는 말이고, 다 이루었다는 말은 말씀이 육체가 되신 아들이 아버지께 대답하는 말이다.
(1).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의인을 버리지 않으시겠다 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왜 나를 버리십니까?(시1:5,6.11:5.34:15,19.75:10.112:6등) 하셨는데 의인이란 하나님과의 바르고 완전한 관계를 가진 사람이다. 이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예수님이셨다. 하나님은 이 사람으로 온 인류를 구속(의인이 되게 )하려고 예수를 보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의인이 필요하다”고 이 사람에게 대답하셨던 것같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않은 아담이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자 예수를 버린 것이지만. 제사예법에 따르면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죄없는 양을 사용는 것같이 예수님은 의인이시기 때문에 불의한 세상에서는 버려졌지만 하나님은 취하신다는 것이다.
죄 있는 자는 죽지 않는데 왜 죄 없는 자가 죽는가? 죄 없는 자로서 죄 있는 자를 속하기 때문이다. 죄인은 죄인을 구원할 수 없다. 사람으로서의 예수님께서 왜 의인을 버리십니까? 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은 “너는 나의 의인이다. 나는 지금 의인이 필요하다”고 대답하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다”(고후5“21). 종교와 세상은 버렸으나 하나님은 취하신 것이다.
(2) "다 이루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최후의 말씀을 하셨을 때 마태와 마가는 "왜 버리셨습니까?" 하시는 말을 들었고 누가는 "영을 아버지께 부탁한다"는 말을 들었으며 요한은 "다 이루었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무엇을 다 이루었는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기름부으신 목적을 다 이루었다는 것이다. 육체가 되신 아들의 절대적이며 유일한 임무는 아버지의 구속을 이루는 것이다.
마태와 마가가의 복음서에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말은 시편22;1을 인용한 말인데 이시는 항변으로 시작해서 승리로 끝을 맺는 고난 중에 승리한 불평중에 승리한 기도로 되어있다. 그러니까 마태와 마가는 고난 속에서 울부짖는 예수님을 보았다면 요한은 하나님의 뜻을 읽고 승리하신 주님을 본 것이다.(시22편을 모두 참고)
하나님의 구속은 아들을 통해서 성취된다
아들은 창조의 방면에서는 수단이고(히1:2) 구속의 방면에서는 사람들을 제자리로 되돌림으로써 죄를 도말하는 인격이시다. 하나님은 아들(인격)을 수단으로 사람을 창조하셨고, 아들(인격)을 도구로 사람을 구속하셨다. 아들은 자신을 수단으로 창조된 인간을 자신을 도구로 하여 구속을 다 이루신 것이다.
ㄱ. 아담을 끝내심
아담은 선악을 아는 지식을 취하고 거역의 길을 나섰다. 그 길은 하나님같이 되어 바벨을 건설하고 하늘에 오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하나님같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 사실을 폭로하여 아담을 끝내심으로서 마귀를 물리치고 구속의 기반을 마련하셨다.
ㄴ. 선악을 아는 지식을 심판하심
선악을 안다는 자들은 자기들의 지식을 따라서 자기들보다 의로운 자를 저주하고 죽였다. 하나님을 높여야 한다는 최선의 지식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을 죽인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바로 선악을 아는 지식의 모순이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지식은 예수를 죽임으로 심판을 받았다.
ㄷ. 유월절 구속의 양으로 드리심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담과 같지 않은 죄없는 유월절 구속의 양으로 확실하게 구별되셨다. 주님은 임무를 완수하신 것이다.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했을 때“나는 의인이 필요하다”하시는 하나님의 요구를 들으신 주님은 “다 이루었습니다.”라고 아버지께 대답하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 아담의 자고함을 끝내시고 그 지식을 심판하셨다. 그리고 유월절 구속의 양으로서 참 사람(의인)을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셨다. 하나님의 대답은 다 이루신 아들을 보라는 것이다.
(b). 하나님은 아들들로서 답하심
하나님은 종말에 아들로 답하신다. 아들이 곧 아버지의 대답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대답이셨듯이 우리가 주님의 대답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묻는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가 대답이 되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다. 교회는 오늘 주님의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