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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3월 2일
제목: 2.새 생명이 필요함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엡2:10 -
성경 본문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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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2. 새 생명이 필요함
a. 새 생명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밭으로 갈아지심
씨를 뿌리려면 먼저 밭을 갈아야 한다. 구속은 새 생명을 위한 준비다. 하나님의 동산에는 생명나무가 있었다. 그런데 아담은 그 열매를 먹지 않고 선악을 아는 지식의 열매를 먹었다. 다른 씨를 받은 것이다. 마치 밀을 심을 밭에 사단이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간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씨를 심기 위해서는 가라지 밭을 갈아엎어야 한다. 구속은 밀을 심기 위해 지어진 밭-인간을 되찾는 것이다. 인간은 가라지가 무성할수록 흙이 아닌 가라지밭으로 보인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고 보니, 즉 갈아지고 보니 흙이었다. 새로운 흙이 된 것이다.
주님은 선악과를 먹은 인류를 대표하는 그 밭으로서 십자가에서 갈아엎어지셨다. 흙은 죄가 없다. 그러나 가라지를 처리하기 위해서 밭이 갈아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은 그 갈아진 밭-예수 안에서 밀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씨, 즉 새 생명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b. 새 생명이신 그리스도
1). 새로운 밭이며 새로운 씨가 되심
그리스도는 새로운 씨를 받아들이기 위해 갈아진 밭이며 동시에 새로운 씨다. 아담으로 인해서 가라지밭이 된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죽으시고 새 인류를 위해 다시 사셨다. 예수님은 죽으심으로 새로운 밭이 되었으며 다시 사심으로 새로운 씨가 되셨다.
2). 위임을 받으심
이렇게 갈아진 밭에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뿌리시는데 그 씨는 곧 영원한 위임이신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굳이 갈라서 본다면 예수는 갈아진 밭이고 그리스도는 새로운 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위임이다. 창세 이전의 하나님의 계획이며 인간에게 부여된 거룩한 위임이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있는 그리스도시다. 그러므로 이 위임의 회복은 새로운 씨로서 영원한 생명의 회복이다.
이 신성한 위임을 아담은 버렸으나 예수는 위임을 받은 그리스도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갈아진 밭으로서의 예수를 받아드릴 뿐 아니라 새로운 씨로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새로운 위임으로서 새 생명이며 새 삶이다. 위임이 없으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는 죽은 것이다. 위임은 종이 되게 하기도 하고 아들이 되게도 하는 새로운 생명이다.
하나님의 동산에는 생명나무가 있었으나 아담은 생명나무를 버리고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을 먹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지식을 버리고 생명나무를 먹은 분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과 함께 동산에 있음으로써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되시며, 우리에게 오신 새 생명의 씨가 되신다. 그는 새 생명, 새사람의 씨요, 새 인류의 구성요소다. 불순종의 씨가 아니요 순종의 씨다. 지식의 씨가 아니요 생명의 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분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은 새 생명을 받은 사람이다.
c. 새 삶을 위해서 새 생명을 받아들임
1). 참 삶은 생명으로부터 옴
새로운 삶은 새 생명으로부터 온다. 개의 삶은 개의 생명으로부터 오며 소의 삶은 소의 생명으로부터 온다. 수양은 개를 더 개 되게 하고 소를 더 소 되게 하는 것이지 새로운 삶은 아니다. 쓰레기장에서만 사는 쥐가 있고 곳간에서만 사는 쥐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디에 살고, 또 어떤 방식으로 살던지 쥐는 쥐인 것이다. 인간은 어떤 모양이든지 다 인간이라는 것이다. 수양을 하나 안하나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은 인간이다.
인간은 원래 인간으로서 완전하게 지어졌다. 하나님이 보시고 심히 좋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좋다고 하신 대로 살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수양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문제다.
2). 지식은 생명이 아님으로 혼란을 일으킴
그런데 더 완전해지려고 선악을 아는 지식을 취한 것이다. 인간의 문제는 더 완전하지 못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식으로 하나님같이 된 것이 문제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완전하시다 하면서 그의 창조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같이 되려 함으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자기 문제인 것이다.
3). 하나님은 관계 회복을 요구하심
하나님은 선악을 아는 지식으로 완전해지기를 원치 않으시고 관계를 회복하기 원하신다. 수도국과 수도꼭지 사이에는 관계회복이 필요하다. 수도꼭지를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해서 물이 나오지는 않는다. 쇠로 만든다고 해서 물이 나오지 않고 금으로 만든다고 해서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관계가 회복되면 물은 나오는 것이다. 관계는 꼭지를 다듬는 것이 아니라 관을 연결하는 것이며 이 연결은 그리스도 안에서 순종하는 것이다. 그가 참 인간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아들로 믿으며, 받아들이고 따르면 끊어졌던 관계는 즉시 회복되고 은혜의 생수는 흘러들어온다(요7:37~38).
4). 하나님은 새 생명의 씨를 주심
하나님은 끊어진 관계를 연결시켜주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을 뿐 아니라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이 그를 통하여, 그 안에서 새로운 위임을 받게 하셨다. 우리는 아담이 버렸던 위임을 다시 찾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 새로운 위임을 받는다. 이 새로운 위임은 새로운 삶이며 새 생명이다.
위임은 삶을 새롭게 한다. 아담은 신성한 위임을 잃었으므로 자존을 위해 일생을 허비하고 허무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위임을 받았으므로 인생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고 그의 말씀을 분배하는 영광을 얻으셨다. 세상에도 인간들이 스스로를 위해 만든 위임이 있지만 하나님의 위임보다 더 나은 위임은 없다. 위임의 수준이 삶의 수준이다. 인간에게 합당한 위임은 인간이 줄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 주실 수 있는 것이다.
이 위임은 새 사람의 생명이다.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아담은 하나님의 위임을 버렸으므로 죽은 자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위임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살아났다. 산 자들이다. 산 자들은 산 사회를 만든다. 그러므로 교회는 산 자들의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