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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3월 3일
제목: 3. 새로운 삶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필요로 함
설교자: 이현래 목사
본문: 엡2:8-22 -
성경 본문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2: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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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요약
3. 새로운 삶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필요로 함
새는 둥지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산다. 인간도 그렇다. 둥지가 필요하고 사회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동산을 떠난 인간들은 자기들이 사회를 만들고 그 사회 안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사회의 질은 그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신과 하나님에게 불만인 인생은 자기들이 만든 사회에 대해서도 만족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 이래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 사회를 개혁하려고 피를 흘리면서까지 투쟁해 온 것이다. 그러나 언제, 어느 곳에서나 만족이 없다. 하나님이 주신 인생에 만족이 없으면 모든 것에 만족이 없는 것이다.
a. 아담은 인생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같이 되려 함
흙으로 지어진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기를 받아 하나님을 대리할 자가 되었다. 이것은 쓸모없고 생명이 없는 흙이 귀한 씨를 받아 열매를 생산하는 밭이 된 것과 같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표현함으로써 그의 대리자가 된다는 것보다 복음이 어디 있으며 이보다 귀한 일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제한적인 운명, 마음대로 되지 않음, ....을 타고났으므로 천사에 비해 열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식을 받아 하나님같이 되려고 한 것이다. 천사와 같이 되고 싶은 것이다. 천사가 된다면 과연 자기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천사는 하나님의 부리는 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히1:14). 그런데 복음을 듣지 못한 인간은 누구나 천사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외부로부터 사주를 받은 것이다.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이 보는 존재들 속에 무엇이 사람보다 나은 것이 있는가? 그런데도 왜 부족하다,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성경의 계시는 사단이 사주했다고 한다. 사단은 거역한 천사로서 하나님과 방불한 자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의 능력에 유혹을 받은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탄식한다. 그래서 하나님같이 되고 싶은 것이다.
b. 예수님은 인생으로 만족하심으로 하나님을 나타내고 영화로운 이름을 받으심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운명, 즉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받은 운명으로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 아들의 영광을 얻으셨다. 그에게는 불만이 조금도 없다. 주신 것을 가지고 아담이 부러워하던 천사를 능히 물리치고 하나님을 나타내셨다. 그래서 사단이 그를 유혹할 수 없었고 환경이 그의 길을 막지 못했다.
육신을 죽일 수는 있었지만 하나님을 나타내는 일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그럴수록 아들이심을 드러내심으로써 하나님을 높이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오른 편에 앉히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 안에서 그와 같이 하나님의 주심에 만족하면 사단을 물리치고 인격의 위치를 되찾아 영광에 이른다.
c. 예수님은 자신이 얻으신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분배하심
그는 죽기까지 복종하시고 얻으신 이 뛰어난 이름, 아무나 받을 수 없는 이 영광을 자기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고 그들이 한 사회를 이루도록 거룩한 영을 주셨다. 그러므로 믿기만 하면 된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 그저 믿으면 되도록 완전한 구원을 예비해 놓으셨다.
이 구원은 단순하고 확실하다. 하나님이 주신 운명을 가지고 사단을 정복한 사람을 보면 된다. 보기만 하면 누구나 다 되고도 남는다. 주님은 자신을 하나님이 주신 대로 사단에게 내놓으셨다. 그러자 사단은 물러나고 천사들이 받들었다. 얼마나 쉽고 당연한가!
그런데 아담은 자신이 사람이라는 것에 불만을 가졌기에 사단의 유혹에 걸린 것이다. 사단은 불만 있는 자들을 찾아다닌다. 불만이 있는 자는 걸려든다. 불만이 없으면 유혹에 걸려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주심에 만족하면 사단을 물리치고 인격의 위치를 되찾아 영광에 이른다.
d. 그 사람이 그 사회를 만든다.
1). 거룩한 사회는 거룩한 사람들로 이루어짐.
돼지는 돼지의 사회를, 소는 소의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담은 아담의 사회를,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의 사회를 이룬다. 거역하는 자들은 거역하는 사회를, 순종하는 자들은 순종하는 사회를 이룬다. 그러므로 잔인한 자들은 이상사회를 만든다고 하면서 잔인한 일을 했고, 무지한 자들은 좋은 일을 한다고 하면서 무지한 일을 했던 것이다. 앞으로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구속 받은 자들은 주님의 구속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 살아야 한다. 세상에는 희망이 없다. 구속받지 않은 사람은 아담 안에 있기 때문에 아담의 길을 걷게 되고 그의 체질에 맞는 사회를 만들고 사는 것이다. 새는 둥지를 틀고 토끼는 굴을 판다. 누가 이들을 가르쳐서 다른 방법으로 살게 할 수 있겠는가?
가르침으로 되는 일이 있고 되지 않는 일이 있는 것이다. 1+2를 가르쳐서 3 이 되는 이치를 알게 할 수 있다고 해서 거역의 본성을 바꾸어 순종하게 가르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잠언에는 어리석은 자를 훈계하지 말라고 했다. 어리석은 자가 누군가? 아담이 아닌가? 하나님같이 되려 하는 자는 훈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자를 훈계하다가는 오히려 화를 받는 것이다.
2). 다시 나야 한다고 하심
예수 안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다시 난 사람은 사단의 궤계를 물리치고 순종의 아들로서 아버지를 나타낸다. 아버지만을 나타내는 사람들, 그를 영화롭게 하는 사람들: 자신의 근본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 오로지 주님의 부르심만이 생명이 된 사람들, 사명에 감사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그 안에서 사는 것이다.
3). 아담은 하나님을 떠나서 그 동산을 꿈꾸고 있음
하나님이 없는 곳에는 하나님의 동산도 없다. 그런데 그 동산을 꿈꾸면서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길을 만들고, 작정을 하고, 자신을 다스리려고 한다. 그래서 제사를 드리고 생업을 발전시키고 예술을 만들고 기계를 만들었다(창세기 4장 참조). 그러나 살인이 시작되고 전쟁이 일어났다. 모두들 더 잘 살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이 하나님같이 되려는 인간은 노력할수록 자기 의가 굳어져서 남과 함께 살기 어려운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앞에는 예술이 있고 뒤에는 전쟁이 있어왔다. 나치 독일은 평화를 상징하는 넓은 잔디밭 위에 유대인 수용소를 만들어 놓고 바하의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게 한 가운데 잔인한 살육을 감행했다고 한다. 예술과 살육이 함께 했다는 창세기 4장을 실제로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4).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짐
새로워지지 않은 재료를 그냥 가지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였던 것이다. 인간이 다시 나지 않는 한 새로운 사회는 오지 않는다(요3:3). 새로워지려면 스스로 수양을 해야 하는가? 아니다. 예수의 구속을 받아야 한다. 죽고 다시 사신 이를 인정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어야 한다. 돌로는 돌집밖에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아담으로는 아담의 사회밖에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5). 성경의 마지막 계시는 갓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선포함
예수님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에 의해 죽임당했으나 하나님에 의해 살아난 사람이다. 이 사람이 계시록의 주인공인 어린양이다. 하나님이 다시 살린 이 사람은 인류의 희망이다. 사단에 의해 유혹 받아 하나님같이 된 사람에게 행복한 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가 죽임당했으나 하나님이 다시 살린 사람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날, 옛 하늘과 옛 땅은 종이축이 말려가듯이 말려갈 것이고 세상은 새로워져서 하나님이 만세전에 인류를 위해 예비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이다.